흐릿한 오후의 조각
사은(Saeun)재생 98회
잠 덜 깬 눈을 비비며 베란다 문을 열었어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다 멈칫하고 말았지 통통한 초록 잎 사이 작은 분홍이 고개를 드네 2년 만에 만난 너 참 예쁜 꽃을 피웠구나 햇살이 내려앉은 창가 반찬통에 받아둔 물 가끔은 잊기도 했었는데 너는 혼자서 꿈을 꿨나 봐 그 작은 몸으로 우리 참 잘 버텼다 좁은 방 구석에서 계절이 몇 번을 바뀌도록 너도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봐 기특해 정말 오늘의 너와 나 분홍색 작은 인사 우린 잘 살고 있어 처음 이사 오던 그날 텅 빈 방이 너무 낯설어 편의점 봉투만 덜렁 식탁 위에 놓여있던 밤 외로움에 지친 마음을 너에게 몰래 털어놨지 겨울엔 추울까 봐 이불 옆에 너를 두었어 매일 정성을 다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린 그냥 견디듯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이렇게 예뻐졌네 기다림의 끝에 우리 참 잘 버텼다 좁은 방 구석에서 계절이 몇 번을 바뀌도록 너도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봐 기특해 정말 오늘의 너와 나 살짝 만져본 잎사귀 단단해진 너의 마음 고마워 같이 있어줘서 나도 이제야 웃어 낡은 의자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보네 우리 참 잘 버텼다 좁은 방 구석에서 계절이 몇 번을 바뀌도록 너도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 봐 기특해 정말 오늘의 너와 나 창문에 비친 내 얼굴 조금은 편안해 보여 분홍색 작은 인사 우린 잘 살고 있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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