indie

바닐라 립밤과 이사 전날

재소(Jaeso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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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roles

비가 그치고 바람이 차네
편의점 봉투 바스락대며
라면 한 봉지랑 캔맥주 두 개
계단 내려가는 발소리가 툭
반지하 창문엔 가을 이슬이
어느새 맺혀서 흘러내리네

이사 가려고 박스를 접다
맥주캔 물방울이 툭 떨어져
구석진 서랍장 깊은 곳에서
먼지 쌓인 작은 걸 찾아냈어
네가 쓰다 남긴 바닐라 립밤
뚜껑을 여니 네 냄새가 나네

손때 묻은 뚜껑을 만지작대다
잠시 멈춰서 천장을 보네
희미한 형광등 깜빡거릴 때
잊고 지냈던 네가 떠올라

참 오래도 여기 있었구나
잊은 줄 알았던 우리 시간들
그땐 그랬지 참 많이 웃었지
좁은 방 안에서 우린 전부였지
이제는 담담히 웃어 넘길 만큼
나도 꽤 괜찮은 어른이 됐어

우산 하나로 같이 뛰던 길
어깨가 젖어도 마냥 좋았어
새벽 두 시에 끓여먹던 라면
냄비 하나 두고 마주 앉아서
사소한 얘기에 밤을 지새던
그 작은 부엌도 이제 안녕

마지막 날에 문을 닫던 너
소리도 없던 뒷모습 너머로
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 커
신발장 구석에 남은 슬리퍼
네 사이즈 그대로 덩그러니
그것도 이젠 박스에 담을게

참 오래도 여기 있었구나
잊은 줄 알았던 우리 시간들
그땐 그랬지 참 많이 웃었지
좁은 방 안에서 우린 전부였지
이제는 담담히 웃어 넘길 만큼
나도 꽤 괜찮은 어른이 됐어

바닐라 향기가 코끝에 남아
오늘 밤은 왠지 잠이 잘 올까
행복했었다고 혼잣말하며
남은 맥주 한 모금 넘겨보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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